이치로의 야구글러브를 수제작한 노부요시 츠보타.
일본프로 풀타임 데뷔시즌인 1994년부터 7년 연속 골드 글러브 이후 2001년 메이저리그 데뷔 첫 시즌부터 2008년까지 15년 연속으로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고 있는 이치로 스즈키..
이치로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연속으로 AL에서 가장 수비능력이 뛰어난 외야수 1위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치로는 우익수로서 리그의 중견수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뛰어난 수비능력을 가진 외야수 1위를 독차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치로의 야구 글러브를 수제작으로 만들어 주었던 야구 글러브 제작 명인의 은퇴에 관련한 기사입니다..
이치로의 글러브를 만드는 명인의 손..
Ichiro's glove — The hands of a master
노부요시 츠보타보다 올스타 외야수의 손의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츠보타는 이치로의 커리어 거의 대부분동안 사용했던 글러브를 직접 손으로 만든 사람이다
- Brad Lefton 시애틀 타임스 특별 기고가..
No one takes more pride in the beauty of the All-Star outfielder's hands than Nobuyoshi Tsubota, the man who has handcrafted nearly every professional glove Ichiro has worn. - By Brad Lefton Special to The Seattle Times
이치로는 완벽한 손(글러브)을 가지고 있다.
피부조직도 없고, 관절도 없으며 구부러지는 손가락도 없다. 어떠한 종류의 결점도 없다.
노부유시 츠보타보다 올스타 외야수의 손의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츠보타는 이치로의 커리어 거의 대부분동안 사용했던 글러브를 직접 손으로 만든 사람이다.
이치로에게 있어서 글러브는 정확하게 익숙해지기 위해서 연구가 필요한 정밀한 도구이다.
이치로는 츠보타에게 다른 어떤 선수들의 글러브 보다 더 가볍고 더 부드러운 글러브를 제조하기를 요구했었다. 츠보타는 그러한 글러브는 다른 외야수들의 경우, 손을 다치게 할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치로의 흠잡을데 없는 완벽한 손은 그가 글러브를 완벽히 사용하는 증거였다. 이러한 생각은 75살인 츠보타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이치로와 비교해서 츠보타는 오랜 기간동안 가죽의 모양을 형상화하는 것을 발전시켰던 자신의 손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손가락을 구부렸다. 츠보타의 손은 부상과의 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60년 동안 가죽을 바느질하고 두드리고 구부렸었던 츠보타는 그의 인생동안 헌신적인 노력이 담긴 마지막 2개의 야구 글러브를 이치로에게 주고 난후에 자신의 노쇠한 두 손에게 휴식을 주기로 하였다. 츠보타는 2008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은퇴하였다. 이치로는 틀림없이 이 남자를 그리워할 것이다. 츠보타는 당대의 수공예 기능인으로 일본 정부가 선정했고, 츠보타는 장인으로서 야구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명인께서는 제가 사용할 글러브에 관한 저의 요구를 경청해주었습니다." 이치로는 경외심을 가지고 말했다.
"그것은 제가 샘플을 만들어놓고 그에게 제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설명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적인 기능을 가진 재능, 단지 그가 들었었던 정보만을 바탕으로 한 높은 정밀함은 바로 장인을 나타내는 정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할수가 없습니다. 제가 글러브를 꼈을때의 느낌과 그가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 만들었었던 글러브의 느낌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직 저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미지로부터 정밀하게 글러브를 제작하는 것은 초인적인 재능이며 그것이 그를 진정한 명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명인의 시작. - A master begins
츠보타는 15살의 나이에 쥬니어 하이스쿨을 졸업했었던 1948년에 스포츠 용품회사인 미즈노에 입사했었다. 그는 전쟁전 손으로 야구 글러브를 제작하는 일을 배웠다. 그 당시의 가죽은 매우 귀한 것이었으며 일본의 야구글러브는 2종류만 있었다. 하나는 내야수용 글러브였고 다른 하나는 외야수용이었다. 그의 글러브를 사용하는 사용하는 소비자와 그를 가리켰었던 스승들은 일본 프로야구의 선수들이었었다.
츠보타의 명성과 수주물량은 일본에서 동시에 성장했다. 미즈노는 자사의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츠보타는 이치로보다 20년 이상 먼저 미국에 도착했었다. 1978년이 첫해였다. 츠보타는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동안 벤을 타고 여행하며 임시방편으로 차 트렁크에서 작업을 하였다. 츠보타는 차 뒤에서 즉석에서 야구 글러브를 만들었다. 당시 메츠의 선수였었던 바비 발렌타인은 츠보타가 여행중 만들었었던 수제 글러브를 처음으로 사용한 메이저리거였었다.
그 당시 이치로는 겨우 4살이었지만 미즈노와 츠보타는 이미 설립된지 오래되었으며 그들의 명성은 일본 야구계에 널리 퍼져있었다. 사실 이치로가 6학년때 그의 첫번째 선수형 글러브를 원했을때 이치로는 미즈노 회사 제품을 원했었다. 당시 그 글러브의 가격은 400불이었고 이치로와 같이 보잘것 없는 선수에게는 큰 돈이었다..
이치로는 당시의 글러브가격은 현재로서는 600불 이상이 될것이라고 계산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수공예 글러브의 품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것은 이치로가 츠보타가 만든, 혹은 적어도 츠보타의 관리하에서 만들어진 글러브를 초등학생때 부터 사용해 왔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릭스 블루 웨이브의 이치로가 그의 첫번째 풀타임 시즌에서 한시즌 최다안타기록을 세우면서 폭발했었던 1994년 이전까지는, 모든 일본 사람들이 그랬었듯이, 츠보타도 그의 최고의 고객인 이치로가 자신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 츠보타는 그해 오프시즌에 최다안타 신기록을 보유한 젊은 선수에게 주기 위해서 글러브를 만들었었던 것을 기억하였다.
"저는 오릭스 팀의 일부 사람들에게 이치로가 좋아하는 글러브에 대해서 물어보고 난 이후, 글러브를 만들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스프링 트레이닝기간에 찾아가 체크를 했었습니다. 츠보타는 자세히 말했다. "이치로는 매우 공손했었습니다. 그는 제가 상상했었던 그 이상으로 더 공손했었습니다. 그때 이후부터 저는 이치로의 글러브를 개인적으로 만드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두사람의 14년간의 관계는 그렇게해서 시작되었다.
후계자 계승 - Changing of the guard
그렇지만 츠보타는 올 해 2월까지 그의 은퇴를 발표하지 않았었다. 츠보타의 후계자 승계 계획은 2년 이상이 지속되었다.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츠노에 입사한 코사큐 키시모토는 오랜 기간동안 츠보타의 조수중의 한사람이었다. 2006년 8월 키시모토는 이치로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였었다.
키시모토는 그당시 세이프코를 방문하여 이치로에게 손으로 제작한 6개의 글러브를 선물했었던 것을 기억하였다..
두사람은 매리너스 클럽 하우스의 메인 출입구 바로 안쪽에 있는 좁은 룸에서 만났었다. 이치로는 6개의 선물을 살폈었고 키시모토는 초조하게 이치로 옆에 서있었다. 미즈노의 직원이었던 노리히토 쿠보타 또한 그 룸에서 함께 있었다. 그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치로는 그의 손을 글러브에 끼고 난후 그 글러브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아주 빠른 시간에 결정했었습니다. "
쿠로타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치로는 첫번째 글러브를 꼈습니다. 그리고 5초안에 말했어요. "저는 이 글러브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치로는 다음 글러블 들고서, 손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5초후에 말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치로는 다음 글러브를 손에 껴보고서는 5초후에 선고했었습니다 "안 좋아요..""
"
이치로는 30초 동안에 6개의 글러브를 검사했다. 정리해서 말하면 키시모토가 정성을 들여 만든 제품이 불합격 되는 날이었다.
"당시에 제가 화가 나지 않았었다고 말한다면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키시모토가 솔직히 털어 놓았다. " 제 말은 저는 미국에 그 글러브들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치로는 그 글러브 모두를 한 순간에 불합격시켰습니다. " 그렇지만 이치로의 글러브에 대한 지적은 제가 이치로가 찾고 있는 글러브의 느낌을 잡아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 느낌은 오직 이치로만이 명료하게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저는 글러브의 적절하고 전체적인 균형감에서 부터 나온 최종적인 느낌을 원합니다." 이치로는 설명했다.
"야구 글러브는 제 신체의 연장같은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제 신체위에 있는 도구의 한 조각같은 느낌과는 다른 것입니다. 나는 대부분의 글러브를 껴보았을때 직관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얻을수가 없습니다. 제가 만약 한 부분의 수정을 요구하면 그 부분은 전체적인 발란스를 깨트립니다. 야구 글러브의 전체적인 발란스는 유지한채로 수정이 되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것은 키시모토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치로는 지금 우익수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키시모토는 이치로가 우익수에서 중견수로 수비포지션을 바꾸었을때 글러브 제작과정에 들어갔었다. 그래서 키시모토는 다수의 새로운 요구를 받게 되었었다. 그 요구들중의 일부는 글러브의 강직성을 증가하는 것이었다. 이치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있는 글러브를 요구 하는 모순된 경향이 있었다.
이치로의 우익수 글러브는 1.15파운드이며 평균적인 글러브에 비하면 23퍼센트정도 가벼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치로는 그러한 가벼운 미트는 중견수의 증가된 타구 캐치 환경에서는 오랫동안 유지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치로는 무게의 큰 변화가 없이 더 견고한 성질의 글러브를 요구하였다.
키시모토는 이치로의 신중하고 자세한 요구를 경청하였다. 키시모토는 일본으로 돌아와서 과거의 글러브들을 연구하였고 츠보타의 의견을 참고하였다. 키시모토는 몇개의 샘플 글러브를 더 생산하였고 그해 10월 이치로에게 보여주었다. 키시모토는 초조하게 이치로 옆에 서있었고 글러브 뭉치중의 한 개가 황금같은 소리를 생산해 내었다.
"이 글러브는 가능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치로가 선언했다. 이치로의 이 선언또한 단지 5초가 걸렸다.
이치로는 그 글러브를 그의 오프시즌 훈련에서 사용하였다. 결론은 그 글러브는 너무 부드럽다는 것이었고 매일 경기에서 사용할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키시모토는 돌아와서 설계를 다시하였다. 키시모토와 동시에 츠보타는 이치로의 의견에 따른 글러브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치로는 결국 츠보타가 만든 글러브로 2007 시즌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이치로는 한 시즌에 2개의 글러브를 사용한다. 그는 그중 하나로 시즌을 시작하고 시즌 중간에 다른 하나로 교체한다. 이치로가 요구하는 가벼운 글러브는 글러브 내구성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이것은 그의 시도를 완벽하게 하기 위한 즉각적인 기회를 키시모토에게 주었다. 키시모토는 2007년 5월 몇개의 글러브를 이치로에게 선물하였다.
작년 샌프란 시스코의 올스타 게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드섬머 클래식역사에서 첫번째로 나온 이치로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기억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키시모토에게는 더 큰 개인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가 만든 글러브를 이치로가 사용한 첫번째 경기였습니다." 키시모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치로는 그의글러브를 매우 좋아했었다. 사실 이치로는 2007년 나머지 경기동안 그 글러브를 사용했었다.
명인의 마지막 - End of an era
지난 겨울, 츠보타는 은퇴하기전 이치로를 위한 마지막 2개의 글러브를 제작하였다. 노쇠한 츠보타의 손은 마지막 작업을 하였다. 그것은 그가 만든 글러브와 함께 동봉된 편지였다. 가죽을 다루며 모든 작업을 창조했었던 것 처럼, 이번에는 단순함 속에 우아한 기품이 있는 잉크였었다.
"지속적으로 그렇게 많은 골드 글러브를 수상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내 커리어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이 글러브를 받아주기를 부탁합니다." - 츠보타가 쓴 글이었다.
츠보타의 마음속에는.. 츠보타는 말했다. 그는 이치로가 이번 시즌 그가 선물한 글러브중 하나를 사용하기를 희망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츠보타는 그러한 요구를 절대로 할수가 없었다. 츠보타는 프로페셔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이치로가 감정적인 것을 이유로 하여 결정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치로는 츠보타의 마지막 글러브중에서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키시모토가 수작업한 글러브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항상 통찰력이 있는 외야수는 그라운드 갭에 떨어지는 타구에 대한 런닝 캐치중에 손가락 부분에 약간의 글러브 확장부분때문에 그 글러브의 섬세한 발란스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였다. 키시모토는 급하게 몇 가지의 조정을 하엿고 이치로는 2008 년식의 글러브를 제시간에 가질수 있었다.
이치로는 츠보타가 마지막으로 만든 두개의 글러브를 행운을 가져다 주는 마법의 역할로써 집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두개의 글러브는 이치로가 플레이한 두 나라에서 14년동안 골드 글러브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준 손에서부터 창조된 행운의 마법이었다. : 그리고 그 마법은 이제 자신의 일을 후계자에게 넘겨준 명인의 손에서 나온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