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팬들의 인종차별을 잠재운 "THE THROW"
실력으로 인종차별을 이겨낸 제키 로빈슨
1946년 다저스의 전설적인 단장 브랜치 리키는 흑인 선수 제키 로빈슨을 다저스산하의 몬트리올 로열스에 입단시킵니다. 인터내셔날 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된 로빈슨은 타율1위, 타점 1위를 기록하면서 몬트리올 로열스의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세웁니다. 몬트리올 로열스가 우승하던날 수천명의 백인들이 길거리에서 제키 로빈슨의 이름을 연호했다고 합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었던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고 합니다..
1947년 제키 로빈슨은 마침내 다저스에 입단합니다. 그러나 다저스의 팀 동료들은 흑인인 로빈슨의 입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로빈슨은 원정경기에서 흑인전용 숙소에서 따로 묵어야 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로빈슨에 대해 불만을 가진 백인 야구팬들의 협박편지가 쇄도했었고, 경기에서도 상대팀 투수들은 로빈슨에게 빈볼을 던졌고 상대팀 수비수들은 로빈슨에게 강한 태클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 벤 쳄프먼이 경기에서 로빈슨을 강하게 압박하라는 지시를 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저스 팀 동료들이 로빈슨을 보호하기 시작했으며 제키 로빈슨을 지지하는 백인 야구팬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키 로빈슨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로빈슨의 야구 실력이 인종차별의 벽을 넘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빈슨은 데뷔 첫해 신인상을 수상하며 다저스의 내셔날 리그 우승에 공헌합니다. 이후 로빈슨이 다저스에서 뛴 10년간 다저스는 6번의 리그 우승을 하며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1997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제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을 메이저리그 영구결번으로 결정합니다.
이치로에 대한 인종차별은 없었을까?
그렇다면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포지션 플레이어 이치로 스즈키는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을까?
이치로는 데뷔시즌 신인상과 MVP를 수상하고 전 미국에 이치로 스즈키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치로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 메이저리그 올스타 최다 득표를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후 곧바로 슈퍼스타로 인정받았었던 이치로에게 있어서 인종차별은 생소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치로도 메이저리그 데뷔직후 짧은 시간동안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2001년 4월 10일 4대 1로 승리한 오클랜드 원정경기에서 우익수로 출전한 이치로는 우익 외야관중석의 오클랜드 팬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비아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동전과 얼음조각을 던지며 이치로를 놀려댔습니다. 한 남자는 이치로의 머리에 동전을 던져 맞치고 난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치로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치로를 맞춘 그 남자는 일어나서 인사를 했습니다. 마치 자기가 한 짓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처럼..""우리는 안전요원들에게 그 남자를 알려주었고 안전요원들이 그 남자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
매리너스 투수 라이언 플랭클린.
"이치로는 자신이 당한 일에 쇼크를 받았습니다." 외야수 제이 뷰너..
제이 뷰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메이저리그 첫 번째 시즌인 이치로의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뷰너는 이치로가 우익수 수비를 할때, 존 올러루드가 1루수 수비를 할때 쓰는 것 같은 배팅 헬멧을 쓰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기자는 이날 경기에서 이치로가 우익수 필드에서 얼마나 많은 동전을 줏었는지(오클랜드 팬들이 이치로에게 얼마나 동전을 던졌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것인지 아니면 동전이 내리는 것인지,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어스레틱스는 이치로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면서 동전을 던지는 행위에 대해서 심각하게 여겼고 경기장 안전요원의 숫자를 늘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매리너스는 다음날 경기에서 이치로를 선발출장명단에서 제외시킵니다..
다음 날 경기, 8회초 0 대 0의 균형을 깨기 위해서 매리너스는 선두타자 이치로를 대타로 기용하고 이치로는 좌전안타로 출루해서 득점하고 8회초 매리너스는 3대 0의 리드를 잡게 됩니다.
이치로에 대한 인종차별을 잠재운 'THE THROW
8회말 우익수로 수비에 들어간 이치로는 자신에게 향한 오클랜드 팬들의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잠재웁니다..
8회말 선두타자 테렌스 롱의 우전안타로 출루한 1사 1루 상황에서 라몬 에르난데스는 이치로앞에 떨어지는 우전안타를 기록합니다. 발빠른 테렌스 롱은 이치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2루에서 3루로 향합니다. 그러나 테렌스 롱은 이치로의 레이저 빔 송구로 인해서 3루에서 횡사당하고 맙니다.
이치로의 레이저 빔 송구를 본 오클랜드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이날 밤 이치로의 송구는 미 전역의 방송에서 하이라이트로 송출되었고 이후 이날의 송구는 'THE THROW'로 불리워집니다.
다음날 24시간동안 모든 사람들이 이치로의 송구에 대해서 말한것은- 다음날 게임이 끝난 이후 방송이거나 혹은 게임 시작전의 방송이거나 스포츠 라디오방송에서나 - “The Throw.” 였다.
for the next twenty-four hours all anyone could talk about — on the post-game show, on the pre-game show the next day, on sports-talk radio — was “The Throw.”
몇 몇의 선수들과 코치들 그리고 방송 캐스터들은 그들이 보았던 송구중에서 가장 위대한 송구였다고 말했다.
Several players, coaches, and broadcasters said it was the single greatest throw they'd ever seen.
"대포알 같은 송구였습니다. 그것은 빠르고 파워플했습니다."
“The ball came out of a cannon, it was quick and powerful.”
"그건 마치 이치로가 3루로 동전을 던지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It was like Ichiro threw a coin to third base.”
"이치로의 송구가 레이저 빔 같았습니다. 마치 스타워스에서 보았던 것 같았습니다."
“He threw a laser.”“It was like something out of Star Wars.”
심지어 테렌스 롱도 말했다. "나를 3루에서 아웃시킬려면 완벽한 송구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완벽한 송구였습니다." "퍼펙트한 송구요.."
Even Terrence Long said, “It was going to take a perfect throw to get me, and it was.”A perfect throw.
2001년 MLB.COM은 이치로의 테렌스 롱을 3루에서 아웃시킨 송구를 2001년 메이저리그 최고의 플레이로 선정합니다..
2008 년 USA TODAY의 Mike Dodd는 오클랜드 전에서 보여준 이치로의 송구에 대해서 야구역사에남은 기념비적인 외야 송구라고 평가했습니다.
- 이치로는 2001년 4월 11일 싱글안타때 1루에서 3루로 달리던 오클랜드의 발빠른 주자 테렌스롱을 송구아웃 시켰다.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로서 단지 8경기만에 이치로 스즈키는 아메리칸 리그의 주자들에게 경고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치로의 라이트 필드로부터의 레이저 빔은 단 한 순간도 그라운드에서 3미터 이상 떠오르지 않았으며 논스톱으로 3루 베이스에 완벽하게 도착하였다. -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8경기만에 아메리칸 리그의 주자들에게 경고메시지만 전달 한것이 아니라 아메리칸 리그의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날 밤 이후 오클랜드 팬들의 이치로 맟추기 동전던지기와 인종차별적 발언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강력한 어깨와 자로 잰듯한 정확도를 보여주는 이치로의 송구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