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대표팀. 이종범의 한을 풀어 줄까.

WBC 2009. 3. 4. 19:51 Posted by 쏘왓의 야구블로그


이글은 2006년 제 1회 WBC 대회가 끝난 직후 쓴 글입니다..

에인절스 구장에서 환호하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두번째 WBC 대회의 아시아 예선이 개최되기 바로직전입니다. 3년전 바로 그 경기장.. 일본프로야구의 심장부라는 요미우리의 도쿄 돔에서 이종범의 태극후배들이 선배들의 발자취를 쫒아 가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한국대표팀의 대일전 승리를 바라는 한국인의 마음은 한결같겠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이종범이 한국팀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3년전 이종범이 끝내 다 풀지 못한 일본전의 恨을 한국 야구국가대표 후배들이 풀어주기를 기원합니다.  

회한의 눈물을 쏟은 이종범과 WBC, 후쿠도메와 이치로

90년대 한국야구를 휩쓸은 야구 천재 이종범을 야구장에서 본 사람이라면 해태 타이거스를 응원하던, 혹은 다른 팀을 응원하던지 간에 상관없이 그의 플레이에 매료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종범은 홈런타자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중장거리 타자의 파워와 3할 중반을 유지하는 타율에, 수비의 꽃인 유격수란 위치와 상대팀을 궤멸시키는 뛰어난 도루와 주루 플레이는 한 마디로 한국프로야구라는 “우물”에서 활약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탁월한 야구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 년간 한국야구를 평정하다 자신의 야구능력을 평가 받기 위해 한 수위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프로야구 정복에 오른 이종범에게 쏟아지는 한국야구 팬들의 기대는 아주 높았고 저 역시 이종범이 한국에서 그랬었던 것처럼 일본프로야구에서도 틀림없이  [싹! 쓸! 이!]를 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 이종범 매니아를 자처하던 제 자신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한국프로야구를 호령하던 이종범에게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습니다.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 <한국의 이치로>가 그것입니다. 이중에서 가장 눈 여겨 볼 만한 것은 <한국의 이치로>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치로(73년생)보다 이종범(70년생)이 연상이므로 <한국의 이치로>라는 별명은 이종범한테는 기분 나쁜 호칭일수도 있습니다만, 여하간 당시 이종범은 이치로와 비슷한 야구재능을 가진 선수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평가를 받았습니다.


호타준족에 뛰어난 수비능력을 지닌 두 선수.... 중장거리 라인 드라이브타자… 3할중후반의 타율… 뛰어난 도루능력과 주루 센스… 이종범의 유격수로서의 수비능력과 일본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연패수상을 이어가고 있는 이치로의 외야수비능력..

국적을 달리했지만 유사한 야구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한일양국의 야구 신드롬에 두 나라의 야구팬들은 환호했습니다.

당시 한국프로야구라는 “우물”에만 심취했던 저로서는 일본프로야구의 수준을 가늠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프로야구의 퇴물 선수들이 초창기 한국프로야구에서 불멸의 대기록을 남기기는 했지만 실제로 일본프로야구의 수준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실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동열이 투수로서 일본에 먼저 진출을 했었지만 타자로서는 이종범이 한국프로야구 타자로서는 유일하게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국보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동열이 일본진출 첫 해에는 부진했지만 이듬해부터 30세이브를 성공시키면서 주니치의 클로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선동열의 세이브 기록시마다 스포츠뉴스에서 짧은 꼭지로서 취급했었습니다. 저로서는 일본프로야구의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고는 하지만 선동열의 예에서 보듯이 아구 천재 이종범이 타자로서 일본프로야구의 심장부를 강타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98년 선동열과 이종범이 소속된 일본 센트랄 리그의 경기는 당시 동양위성방송에서 매 경기를 단독중계 했었습니다. 선동열은 이기는 경기에만 등장하는 클로저이기에 뜨문뜨문 볼 수 있었지만 이종범은 스타팅 선수였기에 그가 나오는 경기를 라이브로 중계된다는 사실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일본정복이라는 대장정에 동참하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종범은 98년 주니치 드래곤스의 선발 유격수로 나와서 시즌 초반에 팀 공격순위의 상위권에 랭크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가와지리 투수한테 팔꿈치 부상을 당하고 그 이후 이종범은 슬럼프의 긴 늪에 빠지게 됩니다. 99년에는 거물신인 고스케 후쿠도메가 주니치에 입단하여 유격수로서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이종범은 후쿠도메에 밀려서 외야수로 보직변경을 받게 되었지만 2할3푼8리의 처참한 기록을 남기며 2군을 오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치로와 비교는 고사하고 신인 후쿠도메에게도 밀려나는 야구천재 이종범의 수모시대는 슬럼프를 겪어보지 못했던 이종범의 야구인생에서 뼈아픈 수모의 시절이 됩니다…

그러나 이종범은 결국 한국야구팬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채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의 수준의 차이만 확인시켜준 채로 귀국길에 오르고 해태에서 기아로 바뀐 소속팀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한국프로야구의 대스타였던 이종범이 한국야구를 먹칠한 장본인이 된 채 아무런 변명도 없이 빛이 바랠 대로 바랜 채 한국프로야구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되고 맙니다.

2001년 기아 타이거스로 돌아온 이종범은 시즌 종반 45경기에 출장하여 340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오히려 한국야구팬들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방출된 이종범이 한국프로에서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수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이종범은 한해는 좋고 한해는 나쁜 징검다리 기록을 남겼으나 2005년 312의 고타율과 아직도 뛰어난 도루능력, 무엇보다 일본프로야구의 경험자라는 배경에 힘입어 WBC 한국대표팀에 선발되어 일본과의 진검 승부에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나이와 경력에서 이종범은 대표팀의 맏형이었고 자연스레 한국대표팀의 주장이 됩니다.

한국의 영원한 숙적 일본대표팀에는 일본에 이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타 플레이어로 정착한 이치로가 비공식적으로 일본대표팀의 주장이 되었고 일본팀의 또다른 주축이라 할 수 있는 히데키 마쓰이는 양키스의 반대로 인해 대표팀을 고사하게 되었는데 오 사다하루 감독과 일본코칭 스탭은 마쓰이의 대타로서 이종범과 인연이 있는 후쿠도메를 선발하게 됩니다.

후쿠도메는 99년 유격수로서 순조로운 출발을 기록하는듯 했으나 자만으로 인한 연습부족으로 2년간 부진한 기록을 남겼읍니다. 이후 후쿠도메는  절치부심 훈련에 몰두하여 센트랄리그의 대표중심타자로서 성장하였고 2002년 센트랄리그 타격왕과 2003년 출루1위에 오르게 됩니다. 후쿠도메는 유격수에서 주니치의 중견수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종범을 외야수로 전업시킨 당사자인 후쿠도메가 중견수로 전업한 것이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02년과 03년 골드글러브를 수상하였으며 2005년 후쿠도메는 타격2위, 장타율 3위, 출루율 1위를 기록하며 센트랄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이종범과 후쿠도메 이치로 세 선수 모두 외야수로서 WBC에서 운명의 한일전에 참가하게 되는에 실로 극적인 결과를 세 선수 모두 남기게 됩니다. 경기내용면에서 보았을때는 3선수 모두 승자가 됩니다. 후쿠도메는 마쓰이의 대타로서 일본대표팀의 3번타자로 출장하지만 예선리그부터 본선 1라운드까지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게 됩니다. 후쿠도메의 부진에 일본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비판은 일본대표팀 선발을 거부한 마쓰이에게 화살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WBC 탈락의 한 원인이 마쓰이와 마쓰이를 대체한 후쿠도메의 부진으로 부각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게 <30년 논쟁의 도발적인 발언>을 한 이치로는 준결승 이전의 시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일본의 준결탈락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으로서 부각이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됩니다. 당시 아이러니 하게도 30년 발언에 자극을 받은 한국팀의 파이팅을 일깨워준 단초를 제공한 선수가 이치로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해서 이치로와 일본대표팀은 낭떠러지 끝까지 몰리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 두 선수에 비해 빈약한 한국타선의 선봉장으로서 고타율을 기록중이었던 이종범은 마침대 화룡점정의 장면을 본선의 일본2차전에서 보여주게 됩니다… 승부의 추가 어느쪽으로 기울련지 알수 없는 살얼음 대결을 펼치던 8회초, 승부를 가르는 결승 2타점 적시타를 치고 난후 포효하는 이종범의 모습은 세계야구계에, 한국야구의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종점 개인으로서는 일본에서의 수모를 깨끗이 복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종범의 화려한 복수를 보여준 2타점 결승타와 대비해서 준결탈락의 결정펀치를 맞아 초라해 질대로 초라해진 이치로와 후쿠도메의 일그러진 모습은 한국야구팬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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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은 며칠전 한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야구선수로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의외의 장면이었습니다. 야구선수 이종범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일본전에서의 결승타를 터트린 순간도 아니었고, 한국대표팀이 WBC 준결승에 진출한 순간도 아니었습니다. 이종범의 대답은 눈물이었습니다. 한국야구의 대스타 이종범 개인한테 야구선수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일본에서 겪은 수모의 시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한국야구의 위상을 깍아버린 일본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종범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일본에서의 이종범의 실력에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게 되었고 그 때 눈에 띤 이치로의 야구실력에 감탄 이치로 매니아가 되었습니다. 이치로의 야구 경기와 그의 기록을 눈 여겨 본지 10년이 다되어 갑니다. 솔직히 이종범은 기억속에서 지워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종범의 일본에서의 부진은 가와지리한테 맞은 팔꿈치 부상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호시노 감독의 편파적인 차별대우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그냥 한 가지… 이종범의 실력이 부족했었다고 생각하며 아마 제 생각이 맞을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종범이 출장한 주니치의 거의 전 경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종범은 실력으로서 자신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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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본선라운드의 한일전 결승2타점 적시타는 당시 일본야구와 일본 야구팬에게 100%의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해서 준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고 준결승이자 한국과의 3차전에서 이치로의 맹활약과 후쿠도메의 홈런으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치로는 결승전에서도 승부의 쐐기를 박는 결정타를 날리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여유있게 쿠바를 물리치고 오 사다하루의 목표인 세계제패를 이루어 내고 맙니다…

일본에서의 수모를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종범은 결국 일본야구에 100% 완벽한 결정타를 날리면서 복수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야구몰라요라는 하일성씨의 말처럼 결국 일본은 이번대회의 우승국이라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멕시코는 왜 쓸데없이 미국을 이기고 말았을까요. 왜 그 어처구니 없는 미국심판은 홈런을 2루타로 만들어버리는 억지 판정을 해서 멕시코팀한테 승부욕을 불러 있으 켰을까요. 오히려 그 억지 판정이 미국팀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소가 된 것 같은 느낌은 저만이 가지고 있는 것인지…

미국이 준결승전에 올라갔었다면 일본은 최소한 다음 WBC대회까지는 한국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고 이치로와 후쿠도메가 다음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면 평생 한국 콤플렉스와 이종범 콤플렉스를 가슴속에 담아두고 회한의 눈물을 숨기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마치 이종범이 그랬던것 처럼 말입니다…

이번 WBC 준결승저에서 일본이 한국을 밀어내고 결승에 진출하게 된 사실 자체가 참을 수 없는 비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종범의 8회 초 결승 2루타가 일본에게 100% 복수의 기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번 WBC 대회 이전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때는 이치로에 대해서 지지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메이저리그는 국가 대항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대항전.. 그 상대가 한국일 경우에는 역시 어쩔 수 없이 이치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종범이 평생 가슴에 묻어두었던 치욕의 그 회한을 이치로의 가슴속에 돌려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의 이종범이 일본의 이치로를 완전히 벼랑끝으로 몰아부쳐서 그의 야구 커리어를 사지로 몰아넣을수 있었는데... 야구의 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걸 허락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이치로는 한마디로 운이 좋아서 죽었다 살아났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치로는 이번 대회에서 숨통을 끊어 놓았어야 할 한국의 라이벌 일본의 간판타자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큽니다...

이종범의 뜨거운 눈물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언젠가는 이종범이 마저 다 채우지 못한 1%를 채워서 일본에게 완벽한 복수를 해줄 후배선수들이 나타나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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